(새로운 내용을 추가한 경우 추가했음을 표시하겠습니다. 새로운 글을 쓰기보다는 그게 나을 것 같습니다. 기존 내용의 의미있는 변화가 아닌 소소한 수정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핵심 요약
의대 증원은 한국 의료 체제를 흔들 것이므로, 필자는 이를 반대한다. 이 글은 그 이유다. 요약을 하자면 다음과 같다. (조금 긴 글이지만 전반적인 이해를 위해 다 읽어주시기 바란다. 한가지 주의 사항을 드리자면, 이 글에서 가격과 비용은 대부분 비슷한 의미로 사용하였다.)
의료체제의 국가적인 목표는 (질병을 치료하는) 좋은 진료를 싸게 제공하는 것이어야 한다.
한국은 그런 목표를 세계적으로 가장 훌륭하게 달성하고 있는 나라다. 우리나라는 뛰어난 진료와 값싼 진료의 두마리 토끼를 다 잡고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낮은 가격에 환자를 많이 진료하는 박리다매 체제다.
의사 한명이 많은 환자를 보기 때문에 가격이 (의료 수가가) 낮을 수 있다.
의사 한명당 환자 수가 많은 것은 숙련도와 혁신을 촉진하여 비용을 낮추면서 진료 품질도 높인다.
인구당 의사 수는 정책을 결정하는 지표로 부적당하다. 목표는 진료 품질과 비용이지, 인구당 의사 수가 아니다.
더욱이, 인구당 의사 수를 늘이는 것은 박리다매 체제에 역행한다. 이것은 의사당 환자 수를 줄여서 낮은 가격을 유지할 수 없게 한다. 전문화, 숙련을 어렵게 하여 진료 품질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현실의 시장에선 공급이 는다고 가격이 꼭 내려가지 않는다.
의료가 우리에게 주는 건강과 생명이라는 가치는 엄청나다. 그에 비해 의사들이 가져가는 것은 크지 않다. 한국 의사들은 외국 의사들보다 많이 벌지 않는다. 의사들이 진료만 잘 하면 잘 살 수 있는 것이 모두에게 좋다.
필수 의료는 별도의 해법이 필요하다. 문제는 필수 의료가 보상에 비해 일이 힘들고 위험하다는 것이다. 수가 인상이 합리적이지만, 국민들에게 부담이 된다. 국민들은 의사들에게 수가 인상은 자제해달라고 부탁해야 한다. 대신 국민들은 의료 소송을 자제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존경과 감사의 문화가 회복되어야 한다. 돈은 많이 더 못 드리더라도, 감사와 존중으로 보답하는 것이 모두가 사는 길이다. 의사 선생님들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어느 정도의 희생은 할 각오가 되어있다고 믿는다.
대한민국 의료는 세계적인 성공 사례
이 글을 쓰는 이유
필자는 경영 전략과 혁신을 다루는 컨설턴트로서, 그리고 의료 소비자로서, 한국 의료가 상당히 효율적이라고 감탄해 왔다. 그리고 나름대로 그 효율성의 동인을 짐작해 왔다. 그것은 한명의 의사가 많은 환자를 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국민들은 80% 이상이 의대 증원에 찬성하고 있었다. 필자는 “의사 수가 늘면 더 비싸질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국민들이 이게 왜 문제인지를 모르고 있구나.
내 생각을 공유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 글을 쓰기 위해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필자의 생각이 맞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엇이 의료 체제의 목표인가?
전략이란 목표를 달성할 방법이다. 전략을 잘 세우려면 목표를 잘 정의해야 한다. 현실에선 다양한 목표가 있을 수 있지만, 그럴수록 핵심 목표를 정의해야 길을 잃지 않는다.
국가적으로 의료 체제의 핵심 목표는 무엇인가? 필자는 그것이 “가장 낮은 비용으로 가장 높은 진료 성과를 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보다 넓게 정의하자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진료만이 아니라 예방도 포함되어야 한다” 같은 말이다. 일리 있는 의견이다. 하지만 너무 관념적인 논의가 되면 핵심을 놓칠 수 있다. 의료 중에서도 지금 당장의 현안인 의사와 병원으로 좁혀 본다면,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낮은 가격에 질병을 잘 치료해주는 것이다.)
다행히, 이 목표들은 측정이 상당히 가능하다. 진료가 얼마나 잘 되고 있는지, 진료비가 얼마인지는 여러가지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 의료는 이 목표들을 얼마나 잘 달성하고 있을까?
한국 의료 서비스는 가격이 낮다
진찰료 가장 낮음
이정찬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전문연구원의 20019년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초진 기준 한국의 의원급 진찰료는 다음과 같았다.
미국 12만813원
캐나다 6만5539원
프랑스 3만2466원
일본 2만8095원
한국 1만5310원
즉, 한국은 미국의 1/8, 캐나다의 1/4, 일본의 1/2 수준이었다.
재진 진찰료도 별로 다르지 않았고, 일본만 한국보다 낮았다.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시면 기사에서 보시기 바란다.
재왕절개 비용 미국의 10분의 1, 맹장수술은 7분의 1
연세대학교 이해종 교수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재왕절개 수술의 가격은 다음과 같았다.
미국 1만8천460달러
스위스 1만2천318달러
호주 1만1천425달러
한국 1천769달러
역시 우리나라가 가장 쌌다. 미국의 10분의 1이었다. 한국에선 2백만원 좀 넘는데, 미국에선 2천만원이 넘는 것이다. (2011-2012년 기준이었으므로 지금은 두 나라 모두 조금 달라졌겠지만.)
같은 연구에 따르면 맹장 수술도 우리나라가 제일 쌌다. “우리나라 맹장수술 수가는 약 2천달러로, 가장 비싼 미국(1만4천10달러)의 7분의 1 정도였다. 호주(5천622달러)·스위스(5천840달러)·캐나다(6천7달러)·칠레(6천972달러)도 우리의 2.7~3.4배에 달했다. 두 배를 넘지는 않았지만 스페인(2천854달러)·독일(3천351달러)·프랑스(3천741달러) 역시 1.39~1.82배 비쌌다.”
백내장수술도 스위스의 4분의 1, 미국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가격과 지출의 차이 - ‘비싸다’와 ‘많이 쓴다’
한국의 의료 비용이 더이상 낮지 않다는 주장들을 가끔 본다. 보통 경제에서 차지하는 의료비의 비중이 다른 나라에 비해 낮지 않다는 것이다.
2019년에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 대비 경상의료비는 8.2%였다. OECE 평균인 8.8%보다 낮고, 미국(16.8%), 독일(11.7%), 일본(11.0%), 영국(10.2%), 호주(9.4%) 등보다 꽤 낮았지만, 앞에서 본 개별 질병 치료의 비용처럼 압도적인 격차는 아니었다. (출처: 보건복지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OECD Health Statistics 2021)
하지만 이것은 의료 서비스의 가격을 따지는 것과는 전혀 다른 얘기다. 독일 사람들이 맥주를 많이 마셔서 맥주에 지출하는 금액이 많다고 하자. 그것이 독일의 맥주가 비싸다는 증거인가? 당연히 아니다. 바로 그런 경우다.
의료의 가격 차이는 큰데, 지출 차이는 그보다 적은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병원을 많이 가기 때문이다.
2019년에 한국 국민들은 1년에 평균 17.2회로, OECD 국가들 중에서 압도적으로 가장 많이 외래 진료를 받았다. 두번째인 일본이 12.5회였고, 호주 7.3회, 캐나다 6.6, 덴마크 4.0, 스웨덴 2.6회 등이었다. OECD 평균은 6.8회였다.
아래에서 인용한 OECD Health Statistics는 2020년 통계도 있지만, 코로나의 특수성을 배체하기 위하여 2019년 자료로 얘기하였다. (참고로 2019년과 전반적인 경향에 큰 차이가 없다. 한국은 여전히 1인당 의사 외래 진료 횟수가 1위다.)
위 자료에 미국 통계는 없지만, 미국에선 왠만큼 아픈 건 참는다는 것은 많이 듣는 얘기다. 반대로 우리 나라는 ‘의료 쇼핑’이 문제될 지경 아닌가. 가격이 낮으니까 부담없이 가는 것이다.
의료 지출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높아지면 그것도 문제다. 하지만, 그것은 의료의 가격과는 별개로 이루어져야 할 논의다. 우리가 싸다, 비싸다를 얘기하는 것은 ‘가격’을 말하는 것이다.
한국 의료는 진료를 잘한다
의료에서 가격이 낮은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잘 진료하는 것이다. 아무리 가격이 낮아도 진단과 치료를 잘 못한다면 그 의료 체제를 훌륭하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놀랍게도, 한국 의료는 가격은 가장 낮은 수준이면서 진료 수준도 최상급이다.
회피가능 사망률은 예방가능 사망률과 치료가능 사망률을 더한 것이다. 예방가능 사망률은 예방을 잘 했으면 살릴 수 있었을 사망의 비율이고, 치료가능 사망률은 치료를 잘 했으면 살릴 수 있었을 사망의 비율이다.
2020년 한국의 회피가능 사망률은 인구 10만명당 142명으로, OECD 국가들 중에 통계가 있는 34개국 중에 5번째로 낮다. 선진국 중에서도 최상위권인 것이다.
그런데, 치료가능 사망률은 10만명당 43명으로 두번째다. 예방가능한 사망을 막는 데에 필요한 병원 외적인 역량을 제외하고, 병원이 환자를 살리는 역량만을 놓고 보면 세계 최고 수준인 것이다. 일부 나라들을 보자.
스위스 39
한국 43
일본 49
캐나다 58
독일 66
영국 71
OECD 평균 81.8
미국 98
에스토니아 105
헝가리 142
멕시코 230
코로나의 영향이 없었던 2019년을 봐도 비슷하다. 회피가능 사망률은 139로서, 통계가 있는 31개국 중에서 8번째로 낮았다. 치료가능 사망률은 42로서, 2번째로 낮다.
이러한 높은 치료율은 계속 좋아지고 있다. 2011년에는 회피가능 사망률이 10만명 중 228명이었는데 2020년에 142명이 된 것이므로, 38%가 낮아진 것이다. 같은 기간에 OECD평균은 256에서 239로 개선 폭은 6.7%에 그쳤다. 추세가 계속된다면 앞으로 절대적으로나 상대적으로나 더욱 좋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두마리 토끼를 잡은 비결 - 의사당 진료 건수 많음
건강 보험의 낮은 가격과 박리다매
그렇다면, 한국 의료는 어떻게 낮은 가격과 높은 치료율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었을까?
필자가 보기에 그 비결은 의사당 진료 건수가 많은 것이다.
모든 사업의 매출은 ‘가격 x 판매량’이다. 매출을 올리려면 가격을 올리거나 판매량을 올려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병원들은 가격을 올리는 것이 매우 어렵다. 국민건강보험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국민이 사용하는 건강보험 체제는 질병에 걸렸을 때 서로 돕는 원래의 보험 역할 외에, 가격을 통제하는 기능도 한다. 대부분의 진료에 대해서 사실상 국가가 가격을 정하는 것이다.
(한걸음 들어가면 현실은 좀 더 복잡하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를 급여, 적용되지 않는 진료를 비급여 항목이라고 한다. 동네 병원이 “이것도 추가로 하시면 좋아요”라고 하는 것은 대개 비급여라고 보면 될 것이다. 비급여 항목은 가격을 병원이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진료의 대부분은 급여다.)
건강보험이 책정한 수가(가격)는 대체로 낮다. 그렇다면 병원들이 돈을 벌 수 있는, 또는 적자를 내지 않고 운영할 수 있는 방법은 한가지다. 많은 환자를 진료하는 것이다.
(물론 현실에선 한 가지 방법이 더 있다. 가격 통제를 받지 않는 비급여 진료를 많이 하는 것이다. 많은 동네병원들이 실제로 그쪽으로 가고 있다. 2021년에 종합병원의 진료 수입에서 비급여의 비중은 8.2%인데, 동네병원에서는 25%였다. 비급여의 증가는 우리나라 의료 체제에서 중요하게 관찰, 분석해야 할 문제로 보인다.)
한국은 2019년에 평균적으로 의사 1명이 6989명을 진료하였다. 한국 다음으로 많은 터키나 일본의 5000명 수준에 비해서도 훨씬 많았다. OECD 평균의 거의 3.3배였다.
개별 환자에게 받는 진료비는 매우 저렴하다. 그래서 의사 1명당 많은 환자를 진료하여 병원 손익을 맞춘다. 이게 한국 병원들의 기본적인 사업 모형이다. 낮은 가격에 많은 환자를 진료하기. 한마디로 박리다매다.
한국 의료의 가격이 박리다매라서 낮은 것은 알았다. 하지만 박리다매가 어떻게 품질을 좋게 한단 말인가? 의사가 많은 환자를 진료하면 환자당 시간을 적게 들일 수밖에 없으니까 진료의 품질도 떨어지지 않을까?
박리다매는 치료 품질도 올린다
필자는 우리나라 언론에서 한국 의료의 문제점으로 의사가 한명의 환자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자주 본다. 한명의 환자에게 선진국은 많은 시간을 들이는데, 우리나라 병원에서는 의사 선생님과 몇분 얘기하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의사가 환자 한명 한명에게 시간을 많이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정성껏 시간을 들이면 더 진료를 잘 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에 가깝다. 의사 한명이 더 많은 환자를 진료할수록 진료의 품질도 올라갈 것이다. 어떻게?
인간이 어떤 ‘일’을 더 잘 하는 데에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숙련이고, 또 하나는 혁신이다.
숙련은 많은 경험을 통하여 어떤 일을 더 잘 하게 되는 것이다. 같은 일을 해본 경험이 쌓일수록 생산성은 올라가고, 품질도 좋아진다. 노련한 일식당 주방장이 한 주먹을 쥐면 초밥 하나에 적당한 밥이 담기는 것이 그런 것이다.
또 하나는 혁신이다. 일하는 방법을 바꾸는 것이다.
사실 혁신은 인류가 가난을 극복하는 열쇠였다.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이 그런 혁신들이다.
포드는 한대씩 조립하던 그전의 체제와 달리 세분화된 연속 공정을 도입하였다. 공장 근로자가 2년치 월급을 하나도 안 쓰고 모아도 살 수 없던 자동차를 4달치 월급 가격으로 떨어뜨렸다. 포드의 대량생산은 20세기를 그전의 인류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풍요로운 시대로 만들었다.
혁신에도 여러가지가 있지만, 포드의 대량생산은 생산성 혁신이었다. 생산성 혁신은 한명이 더 많은 제품을 만들거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한다. 포드는 연속공정으로 같은 인원수가 훨씬 많은 자동차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국 의료도 마찬가지로 생산성 혁신이 많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의료에서 생산성 혁신은 업무 프로세스의 개선, 기술의 활용 등으로 나타난다. 다른 분야처럼 우리나라 의료는 이런 것들에 대한 관심이 높다. 가격을 높이는 것은 어렵기에, 더 많은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생산성 혁신에 적극적인 것이다.
필자는 지난 10년간 우리나라의 병원들에서 가족들의 암 수술, 골절 수술 등을 겪으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수술비는 예상했던 것보다 쌌다. 병원은 기계처럼 착착 돌아갔다. “아, 이래서 싸고도 치료율이 좋은 것이구나.” 우리나라 병원들의 박리다매 체제는 숙련과 혁신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의사를 자주 만나면 진행되는 병을 발견할 확률이 높아진다 (2024-03-06 추가)
위에서 본 것처럼 낮은 진찰료 덕분에 한국 사람들은 금전적 부담없이 병원을 자주 찾을 수 있다. 진찰 시간이 짧기 때문에, 하루에 진찰 가능한 환자가 많아서 대부분의 동네 병원은 예약 없이 당일에 진찰을 받을 수 있다. 의사 한명이 환자를 길게 보는 체제라면, 비용도 높고 대기일도 길어질 것이다.
이렇게 낮은 값으로 의사를 자주 만날 수 있는 체제는 질병의 발견에도 큰 장점이 있다. 이 점을 알려주신 hansel님의 댓글을 아래에 옮긴다.
대부분의 질병은 "진행" 하며, 그 진행과정에서 진단됩니다. 애매한 증상은 있었지만 오늘 1시간 동안 진료해도 발견되지 않았던 질환은 3일 후에 다른 병원에서 확진될 수 있습니다. 오늘, 내일, 그리고 일주일 후 세 번에 걸쳐 받을 수 있는 3분짜리 전문의 진료의 의료적 가치는 한 달 뒤 예약가능한 1시간 짜리 전문의 진료의 의료적 가치보다 두 배, 열 배, 경우에 따라서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의대 정원 확대는 박리다매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다
‘인구당 의사수’는 잘못된 벤치마킹 지표
이번에 의대 입학정원을 증원하자는 정부의 주장에서 자주 비교되는 지표는 ‘인구당 의사수’다. 다음의 정부 발표를 보자.
“… 우리나라 인구 천 명 당 의사 수는 2021년 기준 2.1명이며, 의사가 1만 명이 늘어나도 인구 천 명당 의사는 2.3명에 불과합니다. 현재 OECD 평균인 3.7명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의사 수는 8만명이며, 2천명을 증원해도 2050년에 OECD 평균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2024년 2월 15일 보건복지부 설명)
잘못된 벤치마킹이다. 처음에 말했듯이, 좋은 전략을 만들려면 우선 목표를 잘 정의해야 한다. 의료 체제의 목표는 무엇이어야 하나? 이 또한 서두에 말했듯이 “가장 낮은 비용으로 가장 높은 진료 성과를 내는 것”이라는 데에 큰 의견 차이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제일 관심을 가져야 할 지표는 목표를 얼마나 달성하고 있는지 알려주는 것이다. 진료 성과와 비용을 보여주는 지표들이다. 앞에서 우리는 그런 지표들을 통해 한국 의료가 진료와 비용 두마리 토끼를 잡은 세계적인 성공사례임을 보았다.
‘인구당 의사수’는 그 자체로는 좋고 나쁨을 얘기할 수 없는 지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좋은 진료와 낮은 비용이지 의사가 많거나 적음이 아니다. 의사를 늘이고 줄이는 것은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변화가 의료의 품질과 비용을 개선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생각해보자. 한국의 의료가 낮은 가격에 높은 진료 성과를 내는 것은 한명의 의사가 많은 환자를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구당 의사 수를 늘이면 어떻게 될까?
의사수가 늘면 비용은 올라가고 진료 성과는 떨어질 것
인구당 의사수를 올리면 의료 비용은 올라가고 진료의 성과는 떨어질 것이다. 왜?
한국 의료는 박리다매 체제, 즉 ‘낮은 진료 가격 x 많은 환자 수’의 사업 방식이다. 그런데 환자의 수가 줄어들면? 병원들은 매출을 유지하기 위해 환자 한명에게 받는 돈을 늘여야 한다. 가격을 올리거나 비급여 진료를 많이 해야 하는 것이다.
진료 성과는 그 변화가 덜 즉각적으로 나타나겠지만, 환자 수가 줄어들면 (환자가 많을 때보다) 의사들의 역량은 결국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우선 숙련도가 낮아질 수 있다. 어떤 질병을 자주 진료할 때와 어쩌다 한번 진료할 때의 숙련도는 같을 수 없다. 혁신의 종류도 달라진다. 환자가 많았을 때는, 많은 환자를 진료해 내기 위한 생산성 혁신이 필요하다. 하지만 환자가 적으면 그건 중요하지 않다. 대신 환자 1인당 단가를 올리기 위한 혁신이 늘어날 것이다. 고가의 진료를 도입하는 것 등이다. 보통 사람들을 위한 혁신에서 부자를 위한 혁신으로 변할 것이다.
다음의 사례를 보면 인구당 의사수를 비교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더 쉽게 알 수 있다. 우리가 보통 비교하는 선진국이 아니라 인도의 사례다.
아라빈드 안과 병원 사례 - 최저가 백내장 수술과 높은 품질
인도의 안과 의사인 고빈다파 벤카타스와미(Gonvindappa Venkataswamy)는 1000만명이 넘는 인도인들이 시력을 잃고 살고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하루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이 시력을 잃으면 생활력을 잃었고, 그로 인하여 대개 2-3년 안에 사망하였다. 그런 시력 장애의 80%는 백내장으로 인한 것이었다. 그는 국립 병원에서 일하고 은퇴한 뒤인 1976년에 백내장 수술 전문인 아라빈드(Aravind) 안과 병원을 시작하였다.
당시에 백내장 수술의 가격은 100달러 정도였다. 하지만 인도인의 연평균 소득은 430달러였다. 많은 사람들이 엄두를 낼 수 없었다. 게다가 안과의사는 많지 않았다. 벤카타스와미는 많은 사람들이 백내장 수술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맥도날드 햄버거 매장에서 발견하였다. 균일한 품질의 햄버거를 빠르게 만들어내는 표준화, 분업화된 체제였다.
아라빈드는 의사들은 수술에 집중하고 수술의 설명이나 준비는 간호사나 다른 인력이 하도록 하였다. 또한 기상천외하게도 의사 한명당 두개의 수술대를 나란히 놓았다. 한 수술대에서 환자를 수술하는 동안, 다른 수술대에서는 준비를 하였다. 의사는 한명의 수술을 마치면 바로 다음 수술을 하였다.
(물론 많은 시행착오와 개선의 과정이 있었겠지만) 그 결과 수술 생산성이 급격히 올라갔다. 많은 백내장 수술은 5분도 걸리지 않았다. 2019년에 아라빈드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인도의 다른 안과의사들은 평균 200-300회 수술을 한다. 이것도 선진국에 비해서는 훨씬 많은 회수다. 하지만 아라빈드의 의사들은 인당 연간 1,500회 이상의 수술을 한다.
하나에 70-100달러 하는 렌즈도 문제였다. 아라빈드는 렌즈의 가격을 떨어뜨리기 위해 자체적으로 렌즈를 제조하였다. 그렇게 자체 제작된 렌즈는 약 2달러였다.
아라빈드의 백내장 수술 평균 가격은 2019년에 90 달러였다. 수술비를 낼 능력이 안 되는 사람들은 무료로 수술을 받을 수 있다. 그렇게 47%는 무료 또는 거의 무료로 시술해주었다. (초기에는 무료 환자가 80%였다.) 그걸 고려하면 전체 평균 가격은 50달러 정도로 추정할 수 있다.
선진 국가들과 비교하면 아라빈드가 얼마나 낮은지 알 수 있다. 가장 낮은 우리나라보다도 훨씬 낮다. (게다가 아래는 2011-12년 수치다. 위의 아라빈드는 2018-19년 정도다.)
아라빈드 50 (달러, 이하 같음)
한국 1,323
프랑스 1,693
캐나다 3,046
미국 4,694
스위스 5,310
인건비 차이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인도의 2018년 인당 GDP는 1,974 달러, 한국의 2012년은 25,466 달러로 약 13배다. 하지만 백내장 수술 비용은 26배다.
비용이 낮은 것은 좋지만, 품질은 괜찮을까? 아라빈드의 의사가 환자 한명당 쓰는 시간은 다른 병원에 비하여 매우 짧을 수밖에 없다. 비싼 병원보다 진료 품질은 못하지만, 낮은 가격을 감안하면 괜찮은 수준일까?
아니다. 아라빈드는 영국이나 유럽보다 더 좋았다.
다음은 수술 후에 최대 교정 시력의 몇 %를 달성했는지다.
영국 89.6%
EU 94.4%
아라빈드 97.2%
수술후 부작용율도 더 낮았다. 다음은 수술 후 후방 캡슐 파열, 조눌러 파열의 비율이다.
영국 2.1%
EU 1.2%
아라빈드 0.7%
다음은 또 다른 부작용인 수술 후 화농성 안구내염 비율이다.
영국 0.14%
EU 0.08%
아라빈드 0.02%
아라빈드는 사회적 기업으로 불리지만, 외부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남지 않았다. 아라빈드는 꾸준히 이익을 냈다. 2009년에는 2천만 달러 매출에 8백만 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하였다. 1976년에 마두라이(Madurai)에서 침상 11개 병원으로 시작한 아라빈드는 2015년에는 인도 전역에 7개의 병원, 침상 4,000개로 성장하였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을까? 한국의료가 낮은 비용과 높은 진료 품질을 함께 달성한 것과 본질은 같다.
하나는 숙련이다. 창업자 벤카타스와미는 “우리는 수련 병원이다. 환자가 많을수록 수련도 더 좋아진다.”고 말했다.
또 하나는 혁신이다. 한 수술실에 수술대를 두개를 놓는다는 발상이 그런 것이다. 의사는 수술에만 집중하고, 다른 일을 줄인 것도 있다. 일하는 방식을 바꾸어서 생산성을 올린 것이다.
아라빈드 안과 병원의 인당 의사수를 늘이자?
잠깐 이런 장면을 상상해보자.
의료 정책을 연구하는 학자가 “아라빈드의 안과 의사를 크게 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구 1백만명당 안과의사 수가 인도는 11명인데, 한국은 40명, 영국은 49명, 미국은 59명이다. 선진국에 비해 인도의 안과의사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라빈드 같은 주요 안과병원들이 빨리 안과 수련의를 대폭 늘여야 한다. 그래서 인구당 안과의사를 10년 안에 선진국 수준으로 올리자”는 것이다.
좋은 정책인가?
절대 아니다. 제일 앞에 말한 것처럼, 전략이나 정책을 결정할 때에는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의사 수는 목표가 될 수 없는 지표다. 이 경우 “인도 국민들이 낮은 비용에 좋은 안과 진료를 받는 것”이 좋은 목표일 것이다. 의사 수를 단순히 따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아라빈드 병원의 경우에는 더욱 말이 안 된다. 아라빈드가 낮은 비용으로 눈수술을 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의사 한명이 많은 환자를 수술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의사 수를 늘이면, 아라빈드는 현재의 가격 정책을 유지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무료 수술을 없앨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되면 가난한 인도 사람들은 다시 옛날처럼 백내장 수술도 못하고 시력을 잃게 될 것이다.
한마디로 거꾸로 가는, 반국민적인 정책이다.
크게 보면 우리나라의 상황도 같다. ‘인구 천명당 의사수’라는 그 자체로는 우리의 목표가 될 수 없는 지표 때문에, 우리나라 의료가 어렵게 이룬 체제를 부정하고 흔들려는 것이다.
수요 공급 원리에 의해 의사수가 늘면 가격이 떨어지지 않을까?
경제학의 기초를 아는 사람들은 마음 속에 이런 생각이 있다. “의사의 공급이 늘면 수요 공급 원리에 의해 가격이 떨어지지 않을까?”
기본 원리로는 맞다. 문제는 실제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맹목적으로 가격 경쟁을 하지 않기 위해) 훨씬 창의적이다.
공급이 늘어나고 가격이 떨어지는 전형적인 상황은 공급자들이 똑같은 제품과 서비스를 판매하는 경우다. 차별화가 안되니까 가격으로 경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경제학이 정립되기 시작한 18세기-19세기에는 농산물, 석탄, 철, 섬유 등 제품간 차별화가 적은 원자재류가 중심이었다. 그래서 가격 경쟁이 중심인 시장이 많았다.
하지만 점점 그렇지 않은 시장이 늘어났다. 지금 할인점에 가보거나 쿠팡에 들어가보라. 양말, 라면 같이 단순한 제품에도 많은 종류가 있다. 옛날에는 무게로 팔던 소금이나 밀가루도 이제는 성분, 제조 방법, 브랜드 등 차별화를 한다. 가격을 단순 비교하기도 어렵고, 가격만으로 구매 결정을 하기도 어려워졌다.
그리고, 경쟁의 강도는 가격을 결정하는 한 요인일 뿐, 전부가 아니다. 사실 가격이 낮아지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공급자 자신의 비용이 낮은 것이다. 이젠 예상하실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 낮은 비용은 숙련과 혁신으로 가능해진다.
20세기 초에 미국에는 3천개의 자동차 회사가 있었다. 요즘의 인공지능처럼 새로이 뜨는 자동차 시장의 스타트업들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품질이 형편 없거나, 부자들만 살 수 있는 비싼 가격의 자동차를 만들었다. 공급자가 많아서 품질 좋은 자동차를 값싸게 살 수 있었던 게 아니었다. 그렇게 된 것은 포드의 연속 공정 혁신이 나온 다음이었다.
외식 시장 - 식당은 늘었지만 가격은 오름
서울의 음식점 수는 2007년 7만 4686개에서 2017년 8만 732개로 8.1% 늘었다. 같은 기간에 서울의 인구는 1042만 명에서 1012만명으로 2.8% 감소했다.
공급은 늘고 수요는 줄었으므로, 가격은 떨어졌을까? 이 질문의 답은 서울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맞출 수 있을 것이다.
서울 인구는 2015년 1029만 명에서 2017년 1012만명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에 음식점 수는 76,804개에서 80,732개로 늘었다. 하지만 그 기간에 외식 물가는 5% 올랐다. 상대적으로도 더 올랐다. 같은 기간에 소비자 물가는 2.8% 올랐다.
왜 그럴까? 필자는 외식업을 하는 친구에게 ‘박리다매’ 전략을 고려할 것을 얘기해 본 적이 있다. “제일 싼 집이 되면 고객들이 많아져서, 주문 하나당 이익은 줄지만 재료 회전도 좋아지고 전체적으로는 이익이 늘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친구는 부정적이었다. 다음과 같은 이유들이었다.
요즘 사람들은 가격 낮다고 더 오지 않는다.
고객이 많아지더라도, 일이 너무 많아지면 그것도 부담이다.
지금도 별로 안 남는데, 내리면 도저히 타산을 맞출 수 없을 것 같다.
올만한 고객에게 제 값 받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박리다매를 한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전체 산업이 박리다매적으로 돌아가는 것이 그냥 되지 않음은 말할 것도 없다.
책 시장 - 출판사는 늘었지만 책 가격은 오름
우리 나라의 단행본 책 시장도 현대의 시장을 잘 보여준다.
한국 사람들은 점점 책을 읽지 않는다. 1년간 책을 한권 이상 읽은 성인의 비율은 2011년의 73.7%에서 2021년의 46.9%가 되었다. 전자책을 읽는 사람들이 늘고는 있지만, 종이책 독서의 감소를 막기엔 역부족이다. 1인당 평균 독서량도 감소했다.
공급자는 늘었다. 2009년에 35,191개였던 출판사 수는 2019년에 70,416개로 두배가 되었다. 도서 발행 종수도 2009년 42,191종에서 2019년 65,432종으로 늘어났다.
수요는 줄었고, 공급은 늘었다. 책 가격은? 당연히 떨어졌을까?
아니다. 책 가격은 오히려 올랐다. 도서의 평균 가격은 2009년 12,829원에서 2019년 16,486원이 되었다. 2010년에서 2015년까지 전체 물가가 약 10% 오를 동안, 도서 가격은 약 25% 올랐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 필자의 추측으로는 책을 읽는 사람들이 주니까, 출판사들은 읽는 사람들에게 더 비싸게 파는 전략을 쓰는 것이다. 그들은 책을 많이 좋아하는 사람들이므로 책값이 조금 올라도 책을 살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야 줄어든 수요를 상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이값 등 원재료 가격의 상승 등 외부적 요인도 있겠지만, 만약 책값을 올리면 책이 안 팔릴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어떻게든 책값을 올리지 않았을 것이다.
의사 수를 늘였을 때의 예상 시나리오 - 국민과 의사 모두 피해자 (2024-03-06 추가)
건강보험이 가격을 통제하는 급여 항목의 의료수가는 단기적으로는 의사 수와 무관하게 (지금처럼 낮게) 유지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어떨까?
예를 들어서 의사당 환자수가 반으로 줄었다고 하자. 건강보험 수가가 그대로면 매출이 반이 된다. 비급여 진료 비중을 안 하는 고지식한(?) 병원일수록 더욱 그렇다. 매출이 반이 되면 인건비 등 고정비 중심인 병원들의 이익은 반이 넘게 줄어든다. 의사들은 당연히 수가를 올려달라고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예전 매출을 회복하려면 수가는 2배가 되어야 한다.
건강보험은 어떻게 나올까? 다는 못 올려줄 것이다. 그러면 국민들이 불만일 테니까. 하지만 조금은 올려줄 것이다. 간단히 생각해서 50%만 올려주었다고 하자. 그러면 병원의 매출은 예전의 75% 수준이 된다. 50% 보다는 높지만, 예전보다 떨어진 것은 변함없다. (또한 많은 병원들이 건강보험에서 자유로운 비급여 진료를 늘일 것이다. 환자 입장에선 이것도 진료당 가격이 올라가는 것과 비슷하다.)
환자들은? 예전보다 진료비가 1.5배 올랐다. 병원에 내건, 건강보험료로 내건. 즉, 의사와 환자들 모두가 피해자가 된다.
의사가 부족하면 필수 의료는 붕괴하는 것 아닌가?
제대로 논하려면 별도의 글이 필요할 것 같다. 필자의 생각들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필수 의료 문제는 다가오는 심각한 문제가 맞다. 아직은 중견 의사들이 유지하고 있지만, 그들이 은퇴하면서 실력있는 의사가 부족해질 수 있다.
필수 의료로 가지 않는 것은 전체 의사의 숫자 문제가 아니다.
젊은 의사들이 필수 의료로 가지 않는 것은 어렵고 힘든 일에 비해 위험은 크고 보상이 작아서다.
의사들은 보상을, 즉 수가를 올리자고 한다. 어느 정도는 필요할지 몰라도, 이걸 올리기 시작하면 암수술 같은 필수의료에서 박리다매가 깨질 수 있다. 의사들의 주장은 합리적이지만, 국민 입장에선 들어주기 쉽지 않다.
가격을 올리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하나 있다. 의료 소송이다. 2013-2018년에 의사가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로 기소된 것은 연 평균 755건이다. 영국의 581배, 일본의 15배다. 처벌 수위도 다른 나라에 비해 높다. 게다가 의사가 수억원대의 배상을 하라는 민사 판결들도 있었다.
국민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의료소송을 자제하는 것이다. 의사가 목숨을 구해주었다고 전재산을 달라고 하지 않지 않나? 의사가 치료를 잘못했다고 해서 의사에게 형사 처벌과 함께 거액의 배상까지 요구하는 것은 매우 불공평하다. 정말 악의적인 범죄가 아니라면, 안타까운 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의료 소송은 의사를 괴롭히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국민들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일이다. 의료 소송을 대비한 수가의 인상, 소송 대비 보험 가입 등은 결국 국민들에게 의료비로 돌아오는 것이다. 자제하자.
필수 의료에 종사하는 의사들은 경제적인 것 이상으로 자부심으로 사는 것 같다. 내가 환자들의 건강과 생명을 지킨다는. 돈으로 해결하기 보다 의사 선생님들에게 감사하자. 국민들이 의사들의 사회적 역할과 노력을 존중하고 존경한다면 의사들은 금전적으로는 조금 양보할 마음이 있다고 믿는다. 지금까지 그래왔으니까.
의사는 너무 잘 산다. 의사 수 증원에 반대하는 것은 결국 밥그릇 지키기 아닌가?
국민의 입장에서, 의사가 얼마나 잘 사는지가 더 중요한가, 아니면 내가 받는 의료 서비스의 가격이 더 중요한가? 당연히 의료 서비스의 가격이 더 중요하다. 의사의 밥그릇은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 밥그릇 얘기를 제대로 하려면 별도의 글이 필요할 것 같다. 우선은 필자가 생각하는 주요 요지만 얘기하자. (일부는 확인이 더 필요한 가설들이다.)
의대 증원을 주장하는 쪽이 말하는 “한국 의사는 평균 2억 6천만원을 벌고, OECD 국가 중에서 제일 소득이 높다”는 것은 사실이 아닌 것 같다. 실제로는 2억원 정도이고, OECD 국가 중에서 높은 순위도 아닌 것 같다.
의사가 우리에게 주는 가치는 그들이 가져가는 소득에 비해 엄청나게 크다. 그것을 생각하면 의사들은 지금 정도의, 아니 더 높은 소득을 받을 자격이 있다.
의사의 소득 증가 원인은 나누어서 살펴봐야 한다. 종합병원 봉직의의 연봉이 오르는 것은 필수의료 지원 의사의 감소와 관련이 있을 것 같다. 개원의의 소득 증가는 일부 개원의들의 (비급여 비중 증가 등) 의료 상업화의 초기 현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것도 필수 의료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의사는 괜찮은 중산층 직업이지, 대부분 최상류층은 아니다. 공부 잘 하는 보통 집안 아이들이 꿈꿀 수 있는 직업으로서 의사가 남아있는 것이 사회적으로 좋다.
의사는 보통 사람들에 비해 일을 많이 한다. 수련 과정도 길고 고되다.
의사가 사업가적인 고민을 너무 많이 하게 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그들이 병원 운영, 일자리 걱정이 아니라 더 나은 진료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이 국민들에게 좋다.
현재의 박리다매 체제의 구조는, 가격을 설정할 자유를 제한하는 대신에 의사 수를 제한해서 중상층 생활을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절묘한 균형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지키는 것이 박리다매 체제를 유지하는 데에 중요하다.
결론 - 지금의 훌륭한 의료체제를 지키자
지금의 훌륭한 체제가 유지되는 데에는 의사들의 사명감이 분명히 작용하고 있다. 앞에서 “건강보험이 한국 의료를 박리다매로 가게 만들었다”고 했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비급여 등 진료보다 돈벌이에 더 욕심을 내면 박리다매 아닌 길도 있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로선 다행하게도 대부분의 의사들은 그런 길을 썩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그들은 가급적 의사의 본분에 맞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싶어한다. 그렇게 매우 상업적인 사람들은 애초에 의대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재에 밝은 사람이 의대 6년, 수련의 4-5년, 군복무도 남들보다 긴 3년 이상을 의사가 되기 위해서 참고 견디겠나?
국민들의 때로는 비현실적으로 높은 기대, 그리고 정부의 거의 공무원을 대하는 듯한 자유의 제한도 어지간하면 수용해온 의사들이다. 필자는 어떠한 논의도 그들의 공로와 헌신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의사들이 평균적으로 잘 살긴 하지만, 필자의 개인적 의견으로는 한국 의사들은 그보다 더한 대접도 받을 자격이 있다. 매우 낮은 가격에 우리의 건강을 지켜주고 있지 않나?
헨리 포드는 연속공정으로 탄생한 모델 T 자동차를 선보인 후 재벌이 되었지만, 미국인들는 그가 너무 부자라고 시기하지 않았다. 자가용은 꿈도 못 꾸던 미국의 농부들, 공장 근로자들은 포드를 사랑했다. 조지아 시골에 살며 여행은 커녕 가까운 도시에 다녀올 엄두도 내기 어려웠을 미국의 한 부인은 헨리 포드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었다.
“이봐요, 헨리. 당신의 자동차가 우리를 진흙탕에서 건졌어요. 우리의 삶에 기쁨을 가져왔어요. 우리는 그 차의 덜그럭거리는 소리까지도 사랑했어요.”
필자는 기본적으로 시장 주의자이지만, 시장 만능 주의자는 아니다. 시장에 완전히 맡기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것들이 있다. 경찰, 군, 소방이 대표적인 일이다.
의료는 시장에 맡기는 것과 공공재로 만드는 것의 장단점이 다 있다. 그렇게 어렵기 때문에 세계 모든 나라들이 최소한 수십년 이상 각종 실험과 시행착오를 겪어왔는데, 대한민국이 그 중 뛰어난 성적을 보인 것이다.
암묵적으로는 한국 의료는 다음과 같은 것들의 절묘한 타협과 균형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건강보험의 의료 서비스에 대한 가격 통제 (자유의 제한)
반면, 의사 공급 일정한 제한 (경쟁의 제한)
가급적 의료의 본질적 역할에 충실하려는 의사들의 직업정신 (조금 덜 벌어도 좋은 의사로 살고싶은 마음)
대한민국의 의료 체제같은 훌륭한 작품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국민들이나 정부가 이해해야 한다. 이루기는 어렵지만 허물어뜨리는 것은 쉽다.
일시적인 판단 착오라고 생각하지만, 정부는 지금 저렴하고 품질 좋은 대한민국의 의료체제를 허물어뜨릴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정부도, 이런 의견을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잘못된 길이었다고 생각하면 생각을 바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도 나라를 사랑할 테니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의사들을 (그리고 간호사들을) 존경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돈으로 해결하자면 답이 없는 문제들도, 존경과 사랑으로 해결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지금 겪고 있는 교육 현장의 문제, 경찰, 소방, 군대의 문제도 의료 문제와 닮은 꼴이다.
위에서 분석적으로 얘기했지만, 필자가 주장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국민: “저희를 봐서 가격은 많이 올리지 말아 주십시오. 하지만 의사 선생님들께 항상 감사합니다. 선생님들께서 걱정없이 의료에만 전념하실 수 있도록 응원하겠습니다.”
의사: “예, 알겠습니다. 저희가 좀 힘들더라도 낮은 가격을 포기하지는 않겠습니다. 대신 저희도 최선을 다 하고 있다는 것은 알아주십시오.”
너무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는 7-80%의 의사들은 열심히 환자보고 진료하고 연구하는데 몰두하면서 세상돌아가는것도 잘 모르고 산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것에 관심 가질 시간도 별로 없으니까요.... 다만 2-30%의 정치적이거나 비상식적인 진료로 의료를 왜곡시킨 의사들의 모습을 일반화 시켜서 실제로 환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하고 정말 도움을 주고있는 늘 환자곁을 지키는 대부분의 의사들이 상처를 받는 상황이 두렵습니다..... 이 상황이 그동안 잘지켜온 우리나라 의료체계를 송두리채 바꾸어 버릴까봐요.....
정말 오랫만에 답글을 적어보네요, 좋은글이고 충분히 객관적이라고 봅니다. 현 시국에 정치적으로 의사들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에 의해 국민들은 정말로 사실이 먼지 모르는것 같습니다. 이런글들이 국민분들이 많이 읽어서 부디 계몽과 의식의 전환을 조금이나마 했으면 합니다